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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한국사 35

박지원의 농업경제사상

「과농소초」와 「한민명전의」에 나타난 연암의 농학과 토지제도의 개혁을 골자로 하는 그의 농업경제사상과 그 저술의 집필의도, 입장, 배경 등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암은 이용후생 이후에야 정덕(正德)을 이룬다는 입장에서 생업과 경제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주장했다. 즉, 그는 “이용이 있은 다음에야 후생, 즉 경제생활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경제생활을 풍부하게 한 다음에라야 도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당시 주자학적인 명분론과 형식논리에 사로잡혀 이용후생의 측면을 도외시하는 비실용과 명분론적인 태도와 현실을 통렬히 비판했다. 농학 또한 어디까지나 상(商)·공(工)의 학과 함께 실학임을 밝혔다. 둘째, 연암은 농·상·공에 대..

교육/한국사 2023.03.16

과농소초 (課農小抄)

과농소초 (課農小抄) 1799년 실학자 박지원이 우리나라의 농학과 중국의 농학을 비교 연구하여 편찬한 농업서. 박지원은 중년 이후 서울을 떠나 황해도 금천군연암협(燕巖峽)에 은거하면서 농학을 연구하였다. 그러던 중, 1780년(정조 4) 삼종형 진하사(進賀使) 명원(明源)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중국 농업의 현황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홍대용(洪大容)·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북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 뒤 지방관직 생활을 하면서 계속해서 우리 나라 농업의 현실을 관찰했고, 그 동안 연구한 농학과 중국의 농학을 비교 연구하여 이 책을 썼다. 먼저 우리 나라 농서의 대부분이 거칠고 자세하지 않기 때문에 농지의 경영에 불합리한 점이 많아 농업의 효과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

교육/한국사 2023.03.16

현량과(賢良科)

현량과(賢良科) 유의어 - 기묘천과(己卯薦科), 천거과(薦擧科), 천과(薦科),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 조선 중종 때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재를 천거하게 하여 대책만으로 시험한 제도. 조광조(趙光祖)의 건의에 따라 시행되었다. 학문과 덕행, 재주가 뛰어난 인재를 천거하게 하여 조선 군주가 직접 면접으로 선발, 관료로 임명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관리 임용 시험인 과거는 경서의 내용을 강론하는 강경(講經)과 글짓기인 제술(製述) 과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만으로는 학문과 덕행을 두루 갖춘 인재를 뽑기 어렵다는 비판이 항상 제기되었다. 연산군 때의 어지럽던 정치를 쇄신해볼 뜻에서 중종은 조광조와 같은 신진사류를 높이 등용하였다. 또한, 그들 역시 여러 방면으로 많은 개혁을 단행했는데, 현..

교육/한국사 2023.03.15

조의제문 (弔義帝文)- 무오사화의 원인

조의제문 (弔義帝文) - 무오사화의 원인 조선전기 문신·학자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하여 1457년에 지은 문서. 제사문. 조의제문(弔義帝文)이란 제목은 '의제를 조문하는 글'이란 뜻이다. 초한쟁패기 항우에게 살해당한 초의제(회왕)의 귀신이 꿈에서 나타났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의제는 항량의 초나라 부흥군에 왕으로 옹립된 왕실의 직계 후손이었으나, 항우에게 쫓겨나 살해당했다. 당시에 아이였다는 점과 일찍 쫓겨나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단종과 겹친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회왕이 왜 꿈에 나타났을까?"라는 마지막 문장의 뉘앙스도 그렇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바로 칠장복이었다. 세자를 거쳐 왕으로 즉위한 정통성 있는 임금, 즉,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을 의미한다는 것. 게다가 조의제문에 나오는 날짜인 정..

교육/한국사 2023.03.13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은 조선에서 시행된 행정 구역 체계이다. 세조 때 실시하여 중앙 집권을 강화하였다. 오가작통법 [五家作統法] 1485년(성종 16) 한명회(韓明澮)의 발의에 따라 채택되어 《경국대전》에 올랐는데, 이에 의하면 한성부에서는 방(坊) 밑에 5가작통의 조직을 두어 다섯 집을 1통으로 하여 통주(統主)를 두고, 방에 관령(管領)을 두었다. 지방은 역시 다섯 집을 1통으로 하고 5통을 1리(里)로 해서 약간의 이(里)로써 면(面)을 형성하여 면에 권농관(勸農官)을 두었다. 오가작통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28년(세종 10)의 『 세종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세종실록』에 “주(周)·당(唐)의 제도를 모방하여 서울의 5부(五部) 각 방(坊)에는 다섯 집을 비(..

교육/한국사 2023.03.10

신유박해 (辛酉迫害)

신유박해 (辛酉迫害) 1801년(순조 1) 신유년에 일어난 천주교도 박해사건. 시파·벽파의 정치 투쟁에서 시파 제거를 오랜 숙원으로 한 벽파가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일으킨 사건이다. 시대적 배경 천주교 전래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받아들여진 천주교는 보유론(補儒論)적 관점에서 실학이라는 흐름과 맞물려 학인들의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부패한 지배체제에 반발한 민중속으로 퍼져나갔다. 북경에서 조선 최초로 세례교인이 된 이승훈이 귀국한후 은밀히 신앙모임을 만들었으나 1785년에 형조에 적발되며 유생들의 거센반발이 있었다.(명례방 사건) 이 사건으로 김범우가 유배지에서 사망하고 모임을 이끌던 이벽이 문중의 압박에 못이겨 자진하면서 '명례방공동체'는 와해되었다. 곧 조직이 재건되어 교세가 성장했으나 제사금지라는 교..

교육/한국사 2023.03.10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 - 조선초기 약재 서적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은 조선 초기 국내의 제도권 의학계의 처방 및 민간의 의학 처방에서 사용되는 약재에 대한 서적으로, 1433년 국가 기관에 의해 간행된 의학 서적이다.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국내에 존재하는 향약방을 총망라하는 책을 편찬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편찬된 서적이 향약집성방이다. 향약제생집성방은 제생원과 같은 당시의 중앙 제도권 의학계에서 사용되는 향약재와 향약 처방을 중심으로 저술되었다면, 향약집성방은 제도권 의학계뿐만 아니라 민간의 향약에 대한 것까지 총망라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향약채취월령'을 반포 했는데 이는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

교육/한국사 2023.03.09

금석과안록 (金石過眼錄)

금석과안록은 조선 후기의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가 진흥왕 순수비 중 황초령비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두 차례에 걸쳐 판독하고 고증한 후 저술한 금석학 논문으로, 철종 3년(1852)에 완성하였다. 운연과안록(雲烟過眼錄), 또는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소장 중이다. ≪완당선생전집 阮堂先生全集≫ 권1에 실려 있는 <진흥왕이비고 眞興王二碑考>에서 제시된 견해를 자세한 고증을 통해 대폭 수정하였다. 끝에는 친구 조인영(趙寅永)과 권돈인(權敦仁)에게 보낸 편지 등을 덧붙여 편찬하였다. 김정희가 이 논문에서 새롭게 밝혀낸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황초령비의 건립연도는 진흥왕 29년(568) 무자년이다. 진흥은 시호(諡號)가 아니라 생존시에 사용한 칭호이다. 삼..

교육/한국사 2023.03.08

균전론 (均田論)

균전론 (均田論) 조선후기 실학자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제기했던 토지제도 개혁안. 당시 소수 지주들의 농지 겸병으로 인한 농촌 사회의 피폐를 근본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주장되었다. 대체로 중국 고대의 정전법(井田法)과 수나라와 당나라의 균전법에 의거해 토지 국유·경자유전(耕者有田)·균등 분배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농지소유제도의 개혁론이었다. 이에 대해 조선 후기의 많은 지식인들이 논의했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형원(柳馨遠)의 균전론이다. 유형원은 이와 같은 사회구조적 변동이 낳은 17세기 조선 사회의 모습을 “부자의 토지는 끝을 모를 정도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가난한 백성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말미암아 이익을 독차지한 세력들이 토지를 모조리 소유한 반면 백성들은 처자를 이..

교육/한국사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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