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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한국사 35

기해예송 (己亥禮訟) - 가장 치열했던 서인과 남인의 1차 예설 논쟁(禮訟論爭)

예송예송의 원래 의미는 '예절에 대한 쟁송, 논쟁'이며이 문서에서는, 효종이 죽고 현종이 즉위한 직후 효종의 의붓어머니인 장렬왕후가 행해야 했던 상례 격식을 두고서인과 남인 간에 여러 차례 격렬하게 벌어졌던학술적, 정치적, 사회적 논의. (기해예송, 갑인예송이 있다)    역사적 배경현종대에 일어났던 두 차례의 예송은 효종이 종법적(宗法的) 지위에 대한 학자들 간의 인식 차이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즉 효종을 인조의 장자로 볼 것인가, 차자로 볼 것인가에 따라 자의대비(慈懿大妃, 조대비)의 복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모든 문제는 1645년(인조 23) 2월에소현세자(昭顯世子)가 죽자, 6월에 인조가 적장손인 세자의 아들을 제치고차자였던 봉림대군(鳳林大君)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시작되었다.  1659년 5월..

교육/한국사 2024.06.01

공민왕의 반원자주정책

개혁의 아이콘 공민왕   배경 : 원명 교체기, 원나라의 힘이 약해짐 1. 전국에 몽골풍 금지 공민왕은 대륙의 정세가 동요하자 이를 이용하여 원나라의 기반을 끊고 완전한 독립을 회복하기 위하여 과감한 혁신정치를 단행하였다.    1. 조일신의 난공민왕의 과감한 개혁정치에 위기를 느낀 판삼사사(判三司事) 조일신(趙日新)이 정천기(鄭天起), 최화상(崔和尙), 장승량(張升亮) 등과 힘을 합쳐 대신 기원과 최덕림 등을 죽이고 정변을 일으켰다.정변에 성공한 조일신은 곧 공민왕을 협박하여자신을 우정승에 임명케 하고,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하였다.한달 뒤 조일신은 다시 자신과 함께 거사를 감행했던 최화상과 장승량 등을 죽였다. 이로써 조일신은 정권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때 조일신은 좌정승으로 승진하였으며, 판군부..

교육/한국사 2024.05.26

9주 5소경

9주(九州)와 5소경(五小京)은 통일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체계로, 신라가 삼국 통일을 달성한 후 중앙 집권의 강화를 목적으로 시행한 행정구역입니다.   9주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지역을 병합하고, 나당전쟁으로 당나라의 잔여세력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축출한 이후, 신문왕 5년(685) 전국의 행정 구역을 9주·5소경으로 재조직하여 편성하였다. 9주는 고대 중국의 행정구역인 구주(九州)에 맞춘 것이고, 5소경은 오행에 맞췄을 가능성이 크다. 주는 현재 대한민국과 고려, 조선의 도와 비슷한 위상의 행정 구역이다. 〈삼국사기〉 지리지를 기준으로 9개 주의 이름은 각각, 상주(尙州), 양주(良州), 강주(康州),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溟州), 웅주(熊州), 전주(全州), 무주(武州)이다.그밖에 특수 ..

교육/한국사 2024.05.23

조선의 제도 - 6조 직계제와 의정부 서사제

6조 직계제(六曹直啓制)는 조선 태종과 세조 시기에 존재했던 정치체제이다. 현대 대통령제와 유사하며, 당시 극도로 강력해진 왕권을 상징하는 제도이다. 조선의 창업군주 태조는 정도전이 꿈꾼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위해 의정부 서사제를 실시했으나 무인정사로 왕좌를 찬탈한 태종이 6조 직계제를 처음으로 실시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이후 세종이 의정부 서사제로 되돌렸으나 계유정난으로 왕좌를 찬탈한 세조가 할아버지처럼 6조 직계제를 시행하여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때까지 지속되다가 중종이 의정부 서사제로 되돌리면서 6조 직계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조선의 최고위 행정 기구로는 의정부와 6조가 있었다. 의정부는 국정 전반의 모든 업무에 대해 국왕과 함께 논의하는 기구였고, 6조는 실제 업무를 수..

교육/한국사 2023.04.26

건원중보 (乾元重寶) - 고려시대 화폐

건원중보 (乾元重寶) - 고려시대 화폐(한반도 최초의 화폐) 건원중보(乾元重寶)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한반도 최초의 화폐를 말한다. ‘건원중보’는 원래 당나라 숙종 건원연간(乾元年間)에 주조, 발행된 화폐인데, 고려는 이를 모방하여 앞면에는 ‘乾元重寶’라는 화폐명을 새기고, 뒷면에는 ‘東國’이라는 글자를 표기한 고려의 건원중보를 주조하였다. 건원중보 철전은 996년(성종 15)에 처음으로 주조되어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이듬해에 발행되었다. 그 뒤 1002년(목종 5)까지 계속 유통되었으나, 이해에 이르러 목종의 교지에 의해 유통이 중단되었다. 원래 목종은 이를 주조, 발행한 성종의 뜻을 이어 그 유통을 더욱 확대하려 하였는데, 주전(鑄錢)만을 사용하고, 추포(鹿布 : 발이 굵고 거친 베로 화폐유통이 활발..

교육/한국사 2023.03.30

포폄법 (褒貶法), 포폄제

포폄법 (褒貶法) 조선시대 관리들의 근무 성적을 평가해 포상과 처벌에 반영하던 인사행정 제도. 포(褒)는 기리다, 칭찬하다, 폄(貶)은 떨어뜨리다, 낮추다 등의 뜻을 가진 한자다. 포폄의 ‘포’는 포상을 의미하고 ‘폄’은 폄하(貶下)를 의미한다. 따라서 포폄법이란 관리들의 근무태도를 평가해서 승진이나 좌천, 포상과 처벌에 반영되던 인사평정제도였다. 고려 시대 고과법,연종도력법 도입, 조선시대에 포폄법 추가 고려나 조선시대 공무원들도 연말이 되면 근무실적평정을 받아야 했다. 이 제도를 포폄법이라 한다. 본디 이 제도는 989년(고려 성종 8년)에 시작되어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수록되기까지 이른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고과(考課)와 포폄이 나누어져 있는데, 고과는 관리의 출퇴근시간, 업무처리 건수, ..

교육/한국사 2023.03.29

노비안검법 - 고려 광종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은 고려 광종 7년(956년)에 실시된 법제로서, 원래 노비가 아니었는데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거나, 빚을 갚지 못하여 강제로 노비가 된 자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법이다. (본래 양인이었는데 노비가 된 사람을 조사하여 다시 양인으로 만들기 위해 956년(광종 7)에 실시한 법.) 신라 말 고려 초에 전국 각지에서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구축했던 호족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토지와 노비를 늘려 자신들의 경제적⋅인적 기반으로 삼았다. 이는 왕권을 크게 위협하고 국가의 통치 기반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를 지향했던 광종(光宗, 재위 949~975)은 노비안검법을 단행하여, 후삼국 통일 전쟁 과정에서 전쟁 포로로 노비가 되었거..

교육/한국사 2023.03.27

정묘약조 (丁卯約條) - 정묘호란, 병자호란

1616 누르하치 후금건국 -> 1623 인조반정 -> 1627 후금 침입 (정묘호란) -> 인조 강화도로 피난 -> 정봉수 (용골산성) 이립 (의주) 의병 -> 형제의 맹약 (정묘약조) -> 후금이 청 건국 1636 -> 군신관계 요구 -> 주화(최명길) vs 주전(김상헌, 윤집, 홍익한, 오달제) -> 병자호란 1636 , 인조 남한산성 -> 남한산성 항복 - 삼전도의 굴욕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조선이 후금(後金 : 뒤의 청나라)과 맺은 강화 조약. 정묘호란 때 평양을 지나 황주에 이른 후금군은 조선측에 서신을 보내어 7가지 죄안(罪案)을 들어 침입의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그 요구 조건으로 ① 후금에 할지(割地)할 것, ② 모문룡(毛文龍)을 잡아 보낼 것, ..

교육/한국사 2023.03.24

기효신서, 속오법 - 조선후기 군사훈련

《기효신서》(紀效新書)는 중국 명(明)의 무장 척계광(戚継光)이 저술한 병서이다.. 간결하고도 명료한 저술로 전략, 무기 및 맨손 격투, 병원 선발, 훈련, 무기, 진법, 군율, 행군, 막사, 병법 등의 다양한 방면을 다루고 있다. 왜구 토벌 등에도 종군했던 척계광의 군인으로써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저술이다. 실제로 왜구들이 쓰는 검을 대적하기 위한 전술로써 칼을 떨쳐낼 수 있는 낭선(狼筅)과, 여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적을 대적하는 전법은 왜구 진압에 크게 효과를 보았다. 한국에서는 임진왜란을 전후해 류성룡의 건의로 《 기효신서》를 적극적으로 수입하여 훈련도감(訓鍊都監)의 교범으로 삼았으며,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되는 정조 시대까지 척법(戚法)이라고 불리며 군사 훈련의 주요 교범이 되었다. 조선은 기본..

교육/한국사 2023.03.23

이앙법(移秧法) - 조선시대의 논농사

이앙법 못자리에서 일정기간 모를 키운 후 본답에 옮겨 재배하는 농법. 이앙법은 벼의 모종을 일정 시기까지 구분하여 재배하고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다른 논으로 옮겨 심어 재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앙법을 통해 벼의 초기 성장과 이후 본격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토지를 나누어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세종 11년(1429) 세종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農事直說≫에 의하면 조선 전기에 논에서 씨앗을 뿌려 재배하는 방법은 水耕·乾耕·揷種(移秧)의 3가지가 있었다. 수경은 물을 댄 논에 볍씨를 뿌리는 방법이고, 건경은 물을 대지 못한 마른 논에 볍씨를 뿌리는 방법이며, 삽종은 논의 일부분인 모판에 볍씨를 뿌렸다가 볍씨가 자라서 일정한 크기의 모가 되었을 때 본 논에 줄을 맞추어 옮겨 ..

교육/한국사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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