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한국사

금석과안록 (金石過眼錄)

리치라이프 연구소 2023. 3. 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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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과안록은 조선 후기의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가

진흥왕 순수비 중 황초령비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두 차례에 걸쳐 판독하고 고증한 후

저술한 금석학 논문으로, 철종 3년(1852)에 완성하였다.

 

운연과안록(雲烟過眼錄), 또는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소장 중이다.

 

≪완당선생전집 阮堂先生全集≫ 권1에 실려 있는

<진흥왕이비고 眞興王二碑考>에서 제시된 견해를

자세한 고증을 통해 대폭 수정하였다.

끝에는 친구 조인영(趙寅永)과

권돈인(權敦仁)에게 보낸 편지 등을 덧붙여 편찬하였다.

 

김정희가 이 논문에서 새롭게 밝혀낸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황초령비의 건립연도는 진흥왕 29년(568) 무자년이다.

진흥은 시호(諡號)가 아니라 생존시에 사용한 칭호이다.

삼국사기는 진흥왕이 북방을 원정한 사실을 빠뜨렸다.

삼국사기가 당시 신라의 영토를 안변(安邊)까지로

비정한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황초령비는 진흥왕 때 신라가 최북단

함흥 지역까지 관할한 사실을 보여준다.

연호와 짐(朕), 제왕 등의 호칭을 쓴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는 자주적인 독립국의 체제를 갖추었다.

북한산비는 무학대사의 비가 아니라

신라 진흥왕의 진흥대왕순수관경비(眞興大王巡狩管境碑)이다.

비문에 남천(南川)이라는 글자가 있으므로,

북한산비의 건립연도는 이천(利川)에

남천군주(南川軍主)를 두었던 568년~576년 사이이다.

 

금석과안록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비문을 판독하는 데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 나라와 중국의 사적을 광범위하게

인용해 합리적인 고증을 시도하였다.

기본 자료의 조사에서도 크기는 물론,

위치와 형상 및 실체의 감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을 기하였다. 김정희는 청나라의

고증학을 수용해 고증 방법을 발전, 정착시켜

우리 나라 금석학(金石學)에 큰 공헌을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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