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한국사

혜민국, 혜민서 - 고려, 조선 의료기관

리치라이프 연구소 2023. 3. 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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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국

 

고려 중기에 백성들의 질병 치료를 위해 설치한 관서.

 

1112년(예종 7)에 설치하여 판관(判官) 4인을 두었는데,

 

본업(本業) 및 산직(散職)으로 교차하고

 

을과(乙科)에 급제한 사람이 권무(權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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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생활

이 혜민국은 충선왕 때 사의서(司醫署)의 소관으로 하였으나

1325년(충숙왕 12) 10월의 교문(敎文) 가운데에

“혜민국·제위보·동서대비원은

모두 폐기……”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관직만 존속되고 있었던 것 같다.

 

1391년(공양왕 3)에 혜민국을 혜민전약국(惠民典藥局)으로

개칭하여 일반 진료에 종사하게 하였다.

1392년 7월의 태조신반관제(太祖新頒官制)에서

혜민고국(惠民庫局)으로 계승되어

고려시대와 같이 판관 4인을 두었다가

1466년(세조 12) 1월에 혜민서(惠民署)로 개칭하였다.

 

1112년(예종 7)에 설치하였고,

충선왕(忠宣王, 재위 1298, 1308∼1313) 대에는

사의서(司醫署)에 속하게 하였다가, 1391년(공양왕 3)

혜민전약국(惠民典藥局)으로 이름을 바꾸어

일반 진료에 종사하게 하였다.

판관 4명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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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들어 태조(太祖, 재위 1392∼1398) 대에

혜민고국(惠民庫局)으로 재설치되었고, 이후 혜민국으로 불렸다.

세조(世祖, 재위 1417∼1468) 대에 혜민서(惠民署)로 명칭을 바꾸어

이후 조선 시대 내내 백성들의 질병 치료를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혜민서

조선시대에 의약과 일반 서민의 치료 및 질병관리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오늘날의 보건복지부, 국립중앙의료원, 질병관리청에 해당한다.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의약품을 나누어 주는 역할을 담당한 관서(官署).

혜민서 터

1392년(태조 1)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혜민고국(惠民庫局)을 설치하였다가, 

1414년(태종 14) 혜민국이라 고쳤다. 

1466년(세조 12년)에 혜민서로 개칭하였으며, 

1882년(고종 19년)에 폐지되었다.

관원은 타관이 겸임하는 제조(提調) 1명, 

주부(主簿)·의학교수·직장(直長)·봉사(奉事)·의학훈도 각 1명과 참봉 4명이 있었다. 

그중 채용시험의 최고 득점자와 직장 이상의 관원 중 

1명은 구임원(久任員)이고, 

그 외는 체아직(遞兒職)이었다.

혜민서는 활인서와 마찬가지로 서민에게 혜택을 주는 기관이었으나, 

한양의 백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한계가 있었다. 

혜민서와 활인서를 아울러 양의사(兩醫司)라고 불렀다.

혜민국  출처:문화콘텐츠닷

예조(禮曹)에 속한 종6품의 관서로, 연원은 고려 예종(睿宗,

재위 1105~1122) 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건국 이후 고려 시대의 제도를 계승하여

혜민고국(惠民庫局)을 설치하였는데,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대 이 명칭을 혜민국으로 변경하였다가,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대 혜민서로 바꾸었다.

MBC드라마 마의6회 혜민서 의녀 홍미금역의 오은

혜민국은 한성부의 남부인 태평관(太平館) 근처에 위치하였다.

주로 도성 내 백성들의 치료를 담당하였으며,

조선 초에는 도성 축조에 참여한 지방 출신 역군들과

감옥에 수감된 죄수의 치료도 함께 담당하였다.

종6품의 주부 1명과 의학교수 2명을 두었고

이밖에 9명의 관원을 두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전기에 비하여 그 규모가 다소 줄어들었다.

혜민서에서는 원활한 약재 조달을 위하여

혜민서 소속 의원들을 지방에 심약(審藥)이라는 관원으로

파견하여 약재를 직접 채취하여 진상하게끔 하기도 하였다.

또한 의원뿐 아니라 의녀(醫女)들도

30여 명이 배속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여성 환자들의 진료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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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몇 차례 폐지와 재설치를 거듭하다가

1882년(고종 19) 완전히 폐지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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