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십도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이 1568년 12월 왕에게 올린 문서. 상소문.
1책. 목판본.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군왕의 도(道)에 관한 학문의 요체를 도식으로 설명하였다.
≪퇴계문집≫ 중 내집(內集) 제7권 차(箚)에 수록되어 있다.
‘성학십도’라는 명칭은 본래
<진성학십도차병도 進聖學十圖箚幷圖>로
≪퇴계문집≫ 내집과 ≪퇴계전서≫에 수록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 진(進)·차·병도의 글자를 생략해
<성학십도>로 명명되고 있다.
진은 <성학십도>의 글을 왕(王 : 宣祖)에게 올린다는 의미이고,
차는 내용이 비교적 짧은 글을 왕에게 올린다는 뜻으로
일명 주차(奏箚)·차문(箚文)·차자(箚子)·방자(膀子)·녹자(錄子)라고도 한다.
병도는 도표(圖表)를 글과 함께 그려 넣는다는 뜻이다.
이황의 ≪성학십도≫는 17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선조에게
68세의 노대가(老大家)가 바로 즉위 원년에 올렸던 소였음을 감안할 때,
선조로 하여금 성왕(聖王)이 되게 하여
온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도록 간절히 바라는
우국충정에서 저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학십도≫는 서론의 내용이 담긴 <진성학십도차>에서 시작해
10개의 도표와 그 해설로 되어 있다.
도표는 태극도(太極圖)·서명도(西銘圖)·소학도(小學圖)·대학도(大學圖)·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인설도(仁說圖)·심학도(心學圖)·
경재잠도(敬齋箴圖)·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이다.
<진성학십도차>에서 이황은 “성학에는 커다란 단서가 있고, ……
백성의 지도자가 된 분의 한 마음은 온갖 징조가 연유하는 곳이고,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온갖 욕심이 잡다하게 나타나는 자리이고,
가지가지 간사함이 속출하는 곳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해 방종이 따르게 된다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에 해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 위기가 오고 말 것이니,
어느 누가 이러한 위기를 막을 수 있겠는가 ……
그래서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삼가는 애틋한 마음가짐으로
날마다 생활을 해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고 하면서
≪성학십도≫를 올리는 진의를 밝히고 있다.
이황은 왕 한 사람의 마음의 징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마음가짐을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삼가는 경(敬)의 내면화를 중요시하였다.
10개의 도표 가운데 7개의 도표는
옛 현인들이 작성한 것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을 골랐고,
나머지 3개의 도표는 이황 자신이 작성한 것이다.
7개의 현인들 도표 가운데 심통성정도는
정복심(程復心)이 작성한 것이고,
이황은 이 도표에 2개의 도표를 첨가하였다.
이렇게 첨가한 2개의 도표에서 이황은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이기(理氣)의 내용을 곡진하게 도해해 설명하고 있다.
이황 자신이 작성한 도표는 소학도·백록동규도·숙흥야매잠도 등의 3개로
제1도에서 제10도에 이르기까지 경의 의미가 일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십도의 내용 서술은 도표와 함께 반드시 앞부분에 경서(經書)와
주희(朱熹) 및 그 밖에 여러 성현의 글 가운데 적절한 내용을 인용한 뒤
저자 자신의 학설을 전개하고 있다.
제1도에서 제5도까지는 “천도(天道)에 기본을 둔 것으로,
그 공과(功課)는 인륜(人倫)을 밝히고
덕업(德業)을 이룩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는 것이다.”고 하며
그 대의를 밝히고 있다.
제6도에서 제10도까지는 “심성(心性)에 근원을 둔 것으로,
그 요령은 일상 생활에서 힘써야 할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높이는 데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앞의 5개 도표는 천도에 근원해 성학을 설명한 것이고,
나머지 5개 도표는 심성에 근원해 성학을 설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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