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37세 이하의 연소한 관리를 재교육하기 위해
규장각 내에 만든 제도.
* 초계문신
초계문신(抄啓文臣)은 조선 후기 규장각에서
특별교육과 연구과정을 밟던
문신(文臣)들을 칭하는 용어이다
정조는 자신의 정치적 친위 세력을
양성할 목적으로 학문 기관인
규장각을 설립하였다.
정조는 각신(閣臣)을 임용하여
친위 세력을 구축한 데 이어서
지속적으로 친위 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1781년(정조 5) 초계문신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제도는 세종때부터 시행되었던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며 그
운영 방식은 1781년 편찬된
문신강제절목(文臣講製節目)에 규정되어 있다.
초계문신 제도는 과거에 급제한
참상관(參上官)⋅참하관(參下官) 가운데
37세 이하 문신들을 선발해
40세가 될 때까지 재교육하는 것이다.
이때 규장각 각신들이
교육과 시험을 전담하였다.
초계문신의 교육 과정은 경전류(經典類)를
강론하는 시강(試講)과
시강을 바탕으로 제술문을 짓는
시제(試製)로 나뉜다.
이들은 유교 경전이 갖고 있는
원래의 깊은 뜻을 깊이 있게 탐구하여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통치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정조의 뜻에 부합하여야 했다.
정조는 초계문신 교육 성과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장려책을 마련했으며,
여러 가지 특권도 주었다.
1781년(정조 5) 처음 시작된
초계문신 선발은
정조가 사망하는 1800년(정조 24)까지
10회에 걸쳐 실시되었고
이때 선발된 인원은 총 138명이다.
초계문신 중 각신으로 진출한 사람은 18명이며,
정조 사후 초계문신을 거쳐간 인재들이
19세기의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그러나 초계문신 출신인 정약용(丁若鏞)은
초계문신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내각에서 초계하는 것은
태평성대의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나라에서 과거 보이는 법을
마련한 까닭은 어진 이를 택해서 뽑고,
그 능함을 알아서 등용하려 함이다.
이미 과거로 뽑아서 벌써 벼슬에 제수했고
이미 청화(淸華)의 지위에 좌정했는데,
이 사람을 다시 시험하고 다시 고과(考課)하니,
이것이 어찌 어질고 유능한 자를
대우하는 도리인가. […]
이것으로 놀이하고 잔치하거나
혹 군신 간에 서로 농지거리하는데
가까우면 독서당[湖堂]의 제술(製述)하는 것도
진실로 좋은 일이 아니다. […]
또 비록 총명한 사람이라도 어전 지척에
돌아앉아서 여러 가지 경서를 강하도록 하니,
잘못 실패하는 때도 있어
황구(惶懼)한 땀이 등을 적시기도 한다.
혹 가벼운 벌이라도 받게 되면
졸렬함이 다 드러나는데,
어린애[童蒙] 같이 때리며 생도같이 단속한다.
국왕은 모름지기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를
신하로 삼기 좋아해야" 하는데
정반대로 "거만하게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여기면서 신하들의 의견을 깔보기 때문에,
서슴없이 할말을 다하는 기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김종수의 주장과 그 방향을 같이 하고 있다.
1781년부터 1800년까지 10차에 걸쳐 138명이 선발되었고
세도정치하에서 중단되었다가 헌종이 정조를 모델로
왕권강화정책을 추진하던 중 1847년과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56명을 선발한 바 있으나
후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초계문신을 역임한 문신들의 명단은
초계문신제명록(抄啓文臣題名錄)에
전체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출처:우리역사넷, 위키백과>
'교육 >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려의 화폐 (0) | 2022.08.08 |
---|---|
조선시대 세금 - 균역법 (영조) (0) | 2022.07.12 |
전시과 (0) | 2022.07.09 |
비변사 - 조선시대 의결기관 (0) | 2022.07.08 |
조선전기 군대소집체계 - 진관체제 (0) | 2022.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