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한국사

고려의 화폐

리치라이프 연구소 2022. 8. 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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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도감


고려 숙종 때 화폐주조를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고려에서는 이미 996년(성종 15)에 철전(鐵錢)을 만들어 사용하게 하였는데,
이전에 미(米)·포(布) 등을 교환수단으로 사용해오던 가난한 일반백성들은
명목가치가 큰 철전을 사용할 수 없어 큰 불편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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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6년 뒤인 1002년(목종 5) 다점(茶店)·주점(酒店)·식미점(食味店) 등의 점포에서만
철전을 사용하고 일반백성은 이전대로 물품화폐를 사용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뒤 농업·공업의 생산력이 발전하여 상품유통이 활발해지면서
보관과 운반이 편리하고 기준이 명확한 금속화폐의 필요성이 점차 대두하고,
한편으로는 송나라에 갔다온 의천(義天)이 금속화폐의 사용을 강력히 주장하자
1097년(숙종 2) 화폐주조의 업무를 담당할 관청으로서 주전도감이 설치되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화폐는 주로 동전(銅錢)으로서,
1102년 12월 해동통보(海東通寶) 1만 5000관(貫)이 처음으로 만들어져
재추(宰樞)·문무양반(文武兩班)·군인에게 분배되었으며,
이어 삼한중보(三韓重寶)·동국통보(東國通寶)·동국중보(東國重寶)·해동중보(海東重寶) 등이 만들어졌다.


고려의 화폐 화동뉴스에서 발췌

 

화폐의 종류


건원중보
건원중보(乾元重寶)는 고려 시대 996년(건원(乾元), 성종의 연호) 15)에 만든
한국 최초의 화폐이다.
본래 중국 당 숙종 때 발행한 화폐를 모방해서 주조한 것으로 보인다.
동그라미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고,
앞면에는 ‘乾元重寶’(건원중보), 뒷면에는 ‘東國’(동국)이라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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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중보
해동중보(海東重寶)는 고려 때의 화폐로서,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철전(鐵錢)의 하나이다.
《계림유사》에는 1103년(숙종 8)에 만들어졌다고
하나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대개 해동통보(海東通寶)가 만들어진 숙종 때의 일로 추측된다.
모양은 둥근 바탕에 가운데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고
상하·좌우로 ‘海東重寶’(해동중보)라는 네 글자가 있는데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 그 형태를 볼 수 있다.

동국통보

동국통보(東國通寶)
동국통보(東國通寶)는 고려 시대 만든 동전의 일종이다.
모양은 둥글고, 가운데 정사각형의 구멍이 뚫렸으며
좌우·상하에 ‘東國通寶’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발행 연대는 미상이나, 해동통보와 같이 숙종 때의 것으로 추측된다.

삼한통보
삼한통보(三韓通寶)는 고려 때 사용한 화폐이다.
1097년(숙종 2년)에는 주전관(鑄錢官)을 두고
4년 후에 주전도감(鑄錢都監)을 설치하였다.
모양은 둥글고 가운데 정사각형의 구멍이 있으며,
상하·좌우로 삼한통보(三韓通寶)라는 글자가 있다.

해동통보
해동통보(海東通寶)는 1102년(숙종 7)에 만든 동전(銅錢)으로
한국에서 처음 사용한 엽전(葉錢)이다.
송나라와 요나라가 전폐(錢幣)를 사용하는 것을 모방하여
1만 5천 관(貫)을 만들어 재상·문무 양반·군인에게 나누어주고
그 유통(流通)을 장려하기 위하여 개경의 거리에 술집과 점포를 열어 사용하게 하였다.

은병
은병(銀甁)은 고려의 은화(銀貨)이다.
1101년(숙종 6) 처음으로 발행하여 전화(錢貨)와 함께 통용케 했다.
은병은 상업과 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주조된 것으로
은(銀) 1근(斤)으로 본국의 지형(地形)을 본떠서 병(甁)을 만들어
이를 화폐로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입이 넓은 데서 활구(闊口)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미(米 : 쌀) 15, 16석(石) 내지 50석, 포 100여 필에 이르는 높은 가격이었다.
따라서 백성들보다는 권세가들이 애호하던 화폐였다.

조선 태종 8년(1408년)에 유통이 금지되었다.

주전도감


주전도감(鑄錢都監)은 고려 시대에 돈을 만들기 위해 새로 세운 관청이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주전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1101년(숙종 6년)에 설치하였다.
이미 1097년에 의천의 건의를 받아 주전관을 두고 돈을 만드는 일을 연구하게 하였는데,
주전도감이 설치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돈을 만들게 되었다.
1102년(숙종 7년)부터 돈을 만들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해동통보를 만들어내고,
이어 해동중보·삼한통보·삼한중보·동국통보·동국중보 및 은병을 만들었다.
오늘날 한국조폐공사에 해당하는 곳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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