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주식

최초의 정크본드 파동 - 프랑스채권파동

리치라이프 연구소 2023. 3. 2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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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크본드 (하이일드채권)>

 

출처: 이데일리

 

정크(Junk)란 쓰레기를 뜻하는 말로

정크본드를 직역하면 쓰레기 같은 채권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고위험상품이나

이자가 높기 때문에 중요한 투자대상이 된다.

 

1980년대에는 미국에서 정크본드 시장이 대두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러한 채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러 기업들이 이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채권은 위험성이 높아, 

많은 기업들이 채무불이행 등의 문제를 겪게 되었습니다.


1989년, 미국의 Drexel Burnham Lambert은 

정크본드 발행에서 큰 역할을 했으나, 

채무불이행 등의 문제로 파산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정크본드 시장은 충격을 받았고, 

이후 수요가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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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 최초의 정크본드 >

최초의 정크본드는

프랑스채권파동이라고 합니다.

 

중세 유럽문화는 이데올로기적인 면에서나

실질적인 면에서나 금융투기와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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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 아래에서는 로마 시대와 같은

금융시스템이 전혀 필요없었습니다.

 

로마에서 번성했던 화폐를 통한 거래가

중세시대에는 물물교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따라

 

중세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공정가격이라는

개념을 부활시켰고,

고리대금업을 금기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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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경제

이윤추구는 도덕적으로 부패한 것이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중세 말기 스콜라적 전통은 붕괴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채권을 발행해 유통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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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는 13세기 중반부터

도시국가의 채권이 매매되었다.

 

마침내 투기가 부활했고.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351년 베니스에서는

정부의 채권값을 떨어트릴 수 있는 루머를

단속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14세기 이후 베니스뿐만 아니라

플로렌스와 피사 베로나 제노바까지 확산되었다.

 

이때 이루어진 상거래와 금융은

이후 주식회사의 자본조달 모델이 되었다.

 

 

16세기 중반 프랑스 정부는

자유도시 인근 호텔에서 채권 등

각종 증권을 매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는데.

이는 유럽대륙 최초로 정식 인가된 거래소이다.

 

1530년대에는 시장조작이 나타났는데

플로렌틴 가스파르 두치(Florentine Gaspar Ducci)

신디케이트 펀드로 매집한 채권을

리옹 시장에서 대량으로 팔아치웠던 거다.

 

1550년대 중반 안트베르펜과 리옹에서는

왕실 채권에 대한 투기 바람이 갑자기 불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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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프랑스 채권에 투기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인들은 저축해놓은 돈을 모두 찾아 쏟아부었고
여인들은 갖은 장식품을 팔아치웠다
.
과부들조차 자신들의 연금ㅇ르 일시불로 받아
프랑스 채권에 투자했다
.
간단히 말해서 모든 프랑스인이 마치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프랑스 채권에 달려들었다
."

- 루비스의 리옹 역사 -

 

 

프랑스 채권은 연 16%의 이자를 지급했다.

또 채권값 하락을 보전해주기 위해

분기별로 1%의 이자를 추가로 지급하였다.

 

시간이 흐른 뒤에 프랑스 채권값은

액면가의 85%까지 할인되어

거래될 정도로 폭락했다.

 

16세기 유럽 왕정의 수준 낮은 신용시스템을

감안하더라도 이 프랑스의 채권 파동은

최초의 '정크본드 파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투기 열풍은 프랑스왕 앙리 2세가

1557년 채무 지급을 거부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공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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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2세&nbsp; &nbsp;출처 위키백과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10세기 중반 유럽에서 탄생하였는데

주로 왕실 채권을 중심으로 투기가 일어났으며

 

1557년 프랑스의 앙리 2세는 재정난을 이유로

왕실 채권의 default를 선언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정크본드 파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출처: 금융투기의 역사 (에드워드 챈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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