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 조선이 일본에서 보낸 국서에 회답 국서를 전하고 피로인을 쇄환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파견한 사절. 개설 임진왜란으로 단절되었던 조일(朝日) 양국 간의 통교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강화 교섭은 조선과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 대마도(對馬島)의 실리가 맞물리면서 빠르게 진척되었다. 1) 먼저 1604년(선조 37) 승려 유정(惟政)과 손문욱(孫文彧)이 탐적사(探賊使)로 에도[江戶][현 도쿄]에 파견되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만나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고 전쟁 중에 잡혀 간 피로인(被虜人)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2) 이후 조선 정부는 조선에서 요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장군의 국서(國書)와 왕릉을 파헤친 범인을 포박해 압송[犯陵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