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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폐지 2

흥선대원군의 개혁

1. 흥선대원군은 누구인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은 아들 고종의 즉위로 조선역사상 유일하게 왕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었으면서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로 대원군에 봉해지고,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섭정을 맡게되었다. 그가 정치를주도했던 19세기 후반 조선은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파락호로 행세하며 왕권을 노리다 이하응은 혈통으로 보면 인조의 셋째아들 인평대군의 8세손으로 왕권과 그다지 가까운 왕족은 아니었다. 헌종 이후 끊어진 정조의 직계는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손자인 철종으로 이어졌고 철종마저도 후사가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왕위와 가까운 왕족들은 모두 왕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동 김씨들로부터 끊임없는 견제를 받..

교육/한국사 2022.09.21

비변사 - 조선시대 의결기관

비변사는 조선의 의결기관으로, '국경 변방(邊)의 일에 대비(備)하는 기관(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약칭으로 비국(備局)이라고 한다. 본래 조선 초 전쟁 등 비상시를 대비해 설치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국무 수행 기능을 이양받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유지되면서 이후 의정부를 제치고 사실상 조선의 최고 국가 의결기관이 되었다. 조선 초기의 비변사는 오늘날 대한민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후기의 비변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같은 최고권력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성종때 지변사재상이 비변사로 확대. 1510년(중종 5)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1517년(중종 12) 기존 임시 기구인 축성사(築城司)를 비변사로 고치면서 그동안 변칙적으로 운영되어 온 지변..

교육/한국사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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